[50]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주문의 허구(링크)를 읽고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주문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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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글이다.
사랑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노동 착취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말. 와닿는다.
회사와 일을 사랑하는 척 해야 하기 때문에 정당한 보수 없이 야간/주말에 일하기도 하고,
가족과의 시간, 여가를 즐길 시간조차 빼앗기기도 하고.
선택받은 몇몇 소수만 - 즉 부자 부모를 가진 사람들만 - 사랑하는 일을 할 가능성이 있기도 하고.
여기서 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 같다. 내용이 궁금하면 저 링크를 읽어보면 될 것 같고.
오늘 이 글을 읽고 남편과 대화를 했는데
글이 제시하는 시각과 다른, 색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이 글은 굉장히 많은 전제를 미리 깔고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고', '모든 사람은 지금 하고 있는 일 자체를 평생 하게 될 것'이라는 전제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저 전제는 바로 깰 수 있다.
1) 이 글은 - 의도는 그게 아닐지라도 - 가사도우미나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 즉 반복적이고 타 직업과의 뚜렷한 구별이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중 그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들을 폄하한다. 그런 사람도 드물겠지만 분명히 있다. 종종 TV에서 소개되는 세차의 달인, 옷 접기의 달인 등등의 달인들이 바로 그 예다. - 설마 이 프로그램이 거짓으로 기획된 것은 아니겠지 - 이들은 같은 직종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프로 의식을 가지고 꾸준히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비록 그 경쟁 상대들의 대부분은 다 영혼없이 그저 돈을 위해 일을 하겠지만 말이다. 대중은 그들을 보며 궂은 일을 하며 힘들게 산다고 동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직업 정신을 존경하고 칭송한다. 하지만 이 글은 그 사람들의 직업 정신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2) 이게 조금 더 중요한데, 현재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추구'하지 않고 있는게 아니다. 식당에서 몇년째 설거지만 하고 있는 노동자의 가슴 속에 어떤 꿈이 자리잡고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을 하며 일단 돈을 벌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훗날 사랑하는 일을 반드시 해내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 때 이 사람의 설거지 업무는 사랑하는 일을 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그 자체로 가치가 있게 된다.
지금 나는 이 글의 내용에 반대하는게 아니다.
오히려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었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알게 모르게 '일을 좋아하라'는 관념을 주입받으며 여가도 건강도 다 해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본인들도 깨닫지 못했던 착취 메카니즘을 깨닫게 해 주는 글인 것 같다.
다만
저 글의 내용이 대부분 구구절절 옳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결론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결국 '우리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 살 수는 없다', '저 말은 나쁘 말이다'라는 결론인 것 같은데
동의할 수 없다.
우리는 전 인생을 통틀어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찾기 위해 살아간다.
비록 그 과정에서 사랑하지 않는 일을 하며 희생을 할지라도 말이다.
(다만 이 희생이 이념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강요당해선 안된다는 것을 위 글이 말해주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꿈을 가지고 사랑하는 일을 찾아가며 살아야 한다.
물론,
현재의 일 자체는 사랑하지 않지만
일이 주는 돈을 사랑하고, 그 돈으로 노후에 사랑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좋다.
그렇게 사는 사람도 분명 자기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인생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져 가고 있는 현재,
죽을때까지 사랑하지도 않는 일을 하고 그 일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너무 슬픈 결말이다.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일, 혹은 사랑하는 인생을 찾았으면 좋겠다.
너무 이상적이긴 하지만, 이러한 소망은 때로는 이상적이어도 괜찮은 것 같다.